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트 체임벌린 (문단 편집) == 기타 == [[파일:external/www.thisisnotporn.net/Wilt-Chamberlain-Arnold-Schwarzenegger-and-Andre-the-Giant.jpg]] * [[아놀드 슈워제네거]], [[안드레 더 자이언트]]와 함께. 가운데 슈왈제네거가 꼬마로 보이지만 188cm의 장신이다.[* 참고로 영화 코난을 찍을때 사진. 슈워제네거가 ESPN의 빌 시몬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안드레와 체임벌린이 종종 아놀드를 아이처럼 번쩍 들어올리곤 했다고. 또한 셋이서 자주 어울렸는데 안드레가 워낙 대인배라 항상 저녁값을 지불했다고 한다. 반면 체임벌린은 천하의 짠돌이라 절대 안 냈다고. 그러던 어느 날, 아놀드가 "오늘은 내가 쏴야지"하고 맘을 먹고 안드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몰래 계산을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안드레가 화가 나 "너 나 열받게 했어!"라면서 아놀드를 들어 올리자 옆에서 체임벌린이 "그래! 나도 낼려고 했다고!"하면서 거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아놀드의 반응은 "웃기고 있네!(That's a good one!)"] * 현재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체임벌린의 경기 영상은 다 전성기가 지난 이후의 모습이라 그의 최전성기 피지컬이 어느정도 수준이었는지 우리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고 한다. || [[파일:external/blog.wanken.com/wanken_wc_house2.jpg]] || || 윌트 체임벌린 저택의 Love-making room, 즉 "사랑을 나누는 방" || * [[평생 독신으로 산 인물|평생 독신이었지만]] 20,000명이 넘는 여인과 동침을 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같은 파트너와 여러 번 한 적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총 횟수는...] 사실 정확한 수치를 밝힌 적은 없지만, 본인의 자서전 꼭대기에서 바라본 경관에서 "이 때까지 나는 리바운드를 잡은 숫자만큼 여자와 잤다"라고 했는데, 통산 기록이 2만 개가 넘기 때문... 자서전 출간일 기준으로 하루에 1.4명의 여성과 자야 가능한 수치이다. [[데니스 로드맨]]은 훗날 이를 두고 '''"내가 계산해봤는데 2만명은 도저히 불가능함"'''이라 말하기도. 사실 이게 절대적 수치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냥 본인이 경기에서 리바운드를 밑도 끝도 없이 잡아대는 것처럼 동침을 밑도 끝도 없이 해댔다는 얘기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는 하지만 언론 인터뷰에서 절대적 수치이며 거짓은 없다고 본인이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일에 14명의 여성과 동침했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니까 매일 1~2명과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고, 특별한 날에는 수십명과 한번에 관계를 하거나 하루에 여러번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불가능은 아니다. 실제 [[킨제이 보고서]]에는 19세기 유럽의 평생동안 5만 명이 넘는 여성과 섹스를 한 남자의 기록이 매우 상세하게 실려있으며[* 이런 인간이 실제 존재했다면 체임벌린이 경험한 여체는 그의 절반도 한참 되지 않는 것이다.] 11살에 즉위한 아라비아의 이반 사드 왕은 일생동안 궁녀나 시녀 등 2만여명과 섹스를 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 정작 체임벌린 본인은 이에 대해 후일 '''"천명의 여자와 한 번씩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한 명의 여자와 천 번 사랑을 나누는 것이 낫다."'''라고 하기도.[* 이후에 이 내용에 대해 누군가가 질문을 했고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지만 4천명은 넘는 건 확실하다고 답했다는데, 이제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 과장이 섞일 수 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피지컬과 관련된 여러 괴물같은 일화나 증언들이 많다. 본인 주장으론 500파운드(220kg)을 벤치프레스 할 수 있었다던지(다만 위에 언급된 것처럼 사실일 가능성이 크진 않다.), 90kg이 족히 넘는 동료 2명을 멱살을 잡고 락커에 밀어서 들어올린 채 혼쭐을 내고 또 다른 선수를 위로 던져올렸다가 받는다든가, NBA팀원들을 보트에서 아기처럼 들어 내린다든가, 130kg에 육박하는 거구로 철봉도 아니고 기둥을 붙잡고 가로본능 자세로 1분 넘게 있다가 내려오고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든가[* 같이있던 동료는 몇초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미 팔씨름대회 준우승자를 팔씨름으로 아이다루듯 이겼다든가[* 그가 유일하게 팔씨름에서 진게 NFL의 [[짐 브라운(미식축구)|짐 브라운]] 이라고한다.], 퓨마를 맨손으로 죽인 적이 있다든가, 물론 위 일화들 중 상당수는 현재로썬 사실확인이 불가능하고, 미국인들 특유의 과장된 말하기 방식이나 너무 오래되어 와전되었을 가능성 등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 한 동료는 "체임벌린이 착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왼손 하나로 우리를 죽일 수 있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당대 NBA 선수 중에서도 체임벌린의 무력은 단연 독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과 달리 느바 내 폭력사태나 벤치클리어링이 숱했던 만큼, 체임벌린이 포악한 성격이었다면 정말로 사람 하나 죽었을지도 모를 일... 물론 체임벌린은 자신이 이성을 잃고 날뛰면 진짜 큰일이 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아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폭력적인 수비를 받으면서도 어지간하면 큰 반응없이 인내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 본 문서에 그의 성품이 플레이 스타일과 피지컬과는 별개로 섬세하고 온화했다는 내용이 적혀져있는데 실제로 그러하였다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유망주 [[모리스 스톡스]]와 그를 전재산까지 털어가며 도왔던 [[잭 트와이먼]]을 위해 열린 자선경기에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해 코트위를 [[https://m.dcinside.com/board/americanbasketball/1619192|빛냈으며]] 이후로도 여러 자선경기를 개최하는등 살아생전 죽는날까지 선행을 몸소 실천했던 성현이었다. * 은퇴 후 [[배구]]에 뛰어들어서 [[배구]]에서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되었다고 한다. [[https://kini.kr/1867|#]] 오히려 농구보다는 [[배구]] 행정에 더 일을 많이 했다고. 그래서 [[배구 관련 인물]] 항목에도 올라와 있다. * 1992년부터 심장질환을 앓았는데, 1999년 로스앤젤레스의 저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뉴욕 닉스]]전에서 100득점한 그 날, 집이 뉴욕인 체임벌린이 뉴욕 닉스팀 보고 같이 버스 좀 타자고 말했다. 버스에서 자다가 잠결에 앞의 선수가 이야기하는 것 들었는데, 자기 욕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어쩔까 하다가 그냥 자는 척하고 도착하고 나서 태워다줘서 고맙고, 100득점 넣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집에 갔다...[*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 몸담았던 3개의 프로구단에서 모두 영구결번이 되었다. 아예 타계 후 전구단 결번으로 지정된 빌 러셀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구단에서 영구결번이 된 선수. 당연히 3개 구단 영구결번은 역대 최초이다. * 22-23시즌부터 신인상의 이름이 윌트 체임벌린 상으로 변경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